졸업장병을 앓는 이들
도어의 예측
도어는 1976년 초판에서 주요 4개국(영국, 일본, 스리랑카, 케냐)를 중심으로 그의 논지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쿠바, 탄자니아, 중국의 자료도 급진적인 사회주의적안으로 함께 다루었다. 일찍 발달한 영국에서 후발 국가인 케냐까지, 네 나라는 각기 다른 발전 단계를 대표한다. 케냐와 같이 최근에 근대화가 급속히 진행된 나라에서는, 학생들이 더 나은 대우를 받는 직종이 있는 '현대적' 경제 영역에 속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병이 가장 치명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러한 예측이 얼마나 들어맞는지는 부분적으로 세 가지 요인에 달려있었다. 첫째 요인은 졸업장의 활용이 공공 부문 고용 규모와 위신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점이다. 공공 부문은 선발에서 졸업장을 활용하였으며, 일본의 경우에는 대규모 관료적 기업에서도 활용했다. 적극적인 소규모 민간 부문은 선발이 공공 부문처럼 공식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졸업장의 영향이 완화될 수 있었다. 후발 국가에서 더욱 빠른 속도의 학력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것이라는 예측은, 정부가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의 확대를 바라는 대중들의 요구를 통제함으로써 약화될 수 있다. 시험 주도의 도구적 교수-학습에 의한 교육적인 것의 훼손은 도덕성과 사회적 관심 같은 문화적 가치를 강조했었던 전근대적인 교육 전통을 강조함으로써 경감될 수 있다. 이러한 문화적 가치는 학교교육이 시험 그 이상의 것이 되도록 했다.
예측은 잘 들어맞았는가?
연구자들은 도어의 대담한 예측이 실현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30년을 기다렸다. 1997년에 이를 재검토할 때 도어는 그가 예측한 것처럼 명료하지 않았음은 인정했지만, 자신이 주장했던 내용의 전반적인 요지를 여전히 지지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영국
'후발 국가'일수록 더 심각한 졸업장병을 겪을 것이라는 예측은 완벽하게 실현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1976년에 상대적으로 졸업장병에서 자유로웠던 영국에서, 이후 20년 동안 졸업장병이 급격히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영국은 직업과 관련된 졸업장들이 증가하고, 특히 고등교육이 확대되면서 졸업장병이 확산되었다. 앨리슨 울프(Alison Wolf, 2002)는 이러한 변화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녀는 영국 정부가 '인간자본'에 대해 지나치게 단순한 관점 보다 자격을 갖춘 노동력=더욱 생산적인 노동력에 근거하여, 국가 차원의 직업 자격 제도를 개발하였다고 보았다. 울프는 이런 조치가 대체적으로 성공적이지 못한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주장했다. 실제 졸업장의 증가는 고등교육을 통해 훨씬 덜 중앙집권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학력 인플레이션은 고용주들의 학사학위 요구나, 전문직 관련 훈련을 받기 위한 필요에서 비롯되었다. '학력주의'는 어떤 분야의 학위인지는 크게 개의치 않는 고용주들에 의해서 나타난다. 중요한 것은 학위의 서열(등급)이고, 부분적으로 어디에서 취득했는지가 중요하다. 이는 도어의 주장과 일치하지만, 그는 영국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 예측하지 않았다. 영국 정부는 50퍼센트의 학생들을 전문학사 학위를 수여하는 2년제 고등교육기관에 진학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워 이를 악화시켰다. 학력 인플레이션은 더 광범위하게 적용되는데, 예를 들어 자격이 필요 없는 보조교사에게도 교육학 학위가 요구되었다. 예상과 달리 학사학위는 직업을 얻는데 가장 적합한 자격이 되었다. 반면 직업과 관련하여 만들어진 직업자격들은 제한된 화폐가치만을 가지게 되었다.
일본
도어에 따르면, 일본은 고전적 의미에서는 '후발 국가이지만 그러한 국가들 중에서는 상당히 이른 시기에 발전한 유형이라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일본에는 수세기 동안 지역의 후원가들에 의해 운영되는 지역학교와(인구의 6-7퍼센트 정도인) 무사 자녀들을 위한 학교가 있었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극적인 변동을 야기했던 일련의 주요 사회개혁과 교육개혁이 추진되었다. 1976년까지 일본은 급격하게 성장하였고 미국 다음으로 두 번째 경제 강국이 되었다. 19세기에는 프랑스 교육제도의 영향을 받았던 복잡한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제도가 미국식으로 변화하였다. 미국의 영향으로 ‘단선형’ 학제로 바뀌었으며, 학생들은 9년 동안의 의무교육을 이수하게 되었다. 3년의 고등학교, 2년제 대학, 4년제 대학교로 조직되었으며, 고등학교와 고등교육 등록생의 급속한 팽창을 보였다.
이와 함께 사회구조 또한 두드러진 변화를 경험했다. 전쟁 중에 일어났던 많은 변화가 그대로 유지되었고, 후발 국가의 상징인 대기업은 관료제처럼 대학졸업자들을 매년 신규 채용하였다. 급여는 교육졸업장의 수준에 따라 표준화되었으며, 교육제도가 경제보다 더 빨리 팽창했기 때문에 기업은 명문대학 졸업생을 선발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았다. 도어가 일본에 대한 예측을 수정한 것은, 일본은 갈수록 더 높은 단계의 졸업장을 받는 것보다 어디에서 교육 받았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쿠오 아마노(Ikuo Amano)는 이런 현상을 '일본은 '특정한 수준'의 졸업장을 수여하는 사회가 아니라 '특정한 기관'의 졸업장을 수여하는 사회'라고 정리했다. 이는 좋은 학교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래서 평가에 대한 중압감이 어린 시절부터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데 유리한 명문중등학교(feeder school)에 입학하기 위해, 어린 학생들은 평가를 준비하고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평가에 대한 중압감은 부분적으로 사교육 영역을 확장시켰다. 사교육은 한정된 자리를 둘러싼 경쟁에서 어느 정도 이점을 제공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발견되는 특별한 경쟁의 형태가 시험이 교수와 학습의 토대를 손상시킨다는 주장을 약화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노는 만연한 표준편차점수(SDS)의 힘을 보여주었다. 이 점수는 학생들로 하여금 동료들보다 높은 등수를 차지하기 위해 더 좋은 점수를 얻도록 부추긴다. 학생들은 무엇을 아느냐가 아니라 ‘정규분포곡선 위’에 위치할 뿐이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시험은 교사들이 학생들로 하여금 공부하고 졸업장을 획득하도록 자극하는 기본적인 수단이며, 교실 질서를 유지하고 통제하기 위해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이 좋은 교육이고 무엇이 이상적인 개인발달의 기준인지에 대한 합의가 약화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표준편차 점수에서 가능한 더 높은 곳에 위치해서, 좋은 점수를 얻고 좋은 학교와 대학에 진학하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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